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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썰

[그룹] 육식동물(肉食動物:욕망의 덫) - 1부 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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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안테나요
2024-11-11 04:11 9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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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동물(肉食動物)





- 욕망의 덫-





[소설속 등장하는 스포츠 토토 규정 혹은 월드컵 실제 경기 일정은 현실과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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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

평범한 회사원 승희, 비록 남들보다 쉽게 잘 느끼는 예민한(?) 몸을 가진 덕분에

낮과 밤의 생활이 약간 다르긴 했지만, 그녀는 보통 회사원이다.

그러던 그녀에게 우연히 스팸과도 같은 문자가 온다.

월드컵 경기결과를 미리 알고 있기라도 한 듯 정확히 결과를 예상하여 알려주는

괴문자!!!

하지만 반신반의하면서도 그 문자의 내용대로 스포츠토토로 배팅을 해보는 승희

월드컵 2차예선 한국 대 아르헨티나전에서 단돈 10만원을 배팅하고 509.9배라는

경이적인 배당을 받으며 승희는 단숨에 인생 역전을 꿈꾼다.

하지만 이제 결과를 알려주는 대신 돈과 승희의 몸을 요구하는 문자의 주인...

괴 문자의 주인에게 줄 돈은 대충 마련했지만, 막상 자신이 배팅할 돈이 없어

막막한 승희에게 평소 승희를 짝사랑 해 온 서대리가 본인이 돈을 빌려주겠다고

나선다. 과연 승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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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 그깟 돈 빌려주고서, 뭐! 날 어찌 해보기라도 하겠다는거야 뭐야!!!”







승희는 기분 나쁜 표정으로 서대리를 흘겨본다. 사실 승희는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서대리의 통장이 10개, 아니 100개라도 절대 서대리에게 돈을 빌릴 마음은 없었다. 사내들이란 꼭 여자에게 작업을 걸 때, 이런식으로 도움을 주겠다며 접근하게 마련이고, 승희 역시 이런 경우를 많이 보아온 터였다.

하지만 자신의 눈 앞에 닥친 이 일생일대의 기회 때문일까? 승희의 마음이 갑작스레 요동치기 시작한다.







“그래!! 저 샌님한테 잠깐 빌려서 확 튕긴다음에 돌려주면 그만이지 뭐! 까짓꺼 원하면 영화관이나 가까운 공원에서 데이트 정도 한번 해줄 용의도 있어! 물론 그리고 나선 완전히 빠이빠이지만!!!”







승희는 이를 악문다. 인생 역전의 기회가 승희의 눈 앞에 있었다.

회사 인근 까페 화장실에서 추행을 당하고, 수치스러운 일을 겪은게 바로 어제였다. 승희는 이런 자신이 이제 세상에 그 어떤 일이라도 못하겠냐는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서대리님...”



“어!! 승희씨... 아...”







서대리의 책상 앞에 서 있는 승희, 단순히 그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녀의 자존심은 몹시 상해있었다.







“승희씨가... 왠일로.. 나한테...”



“저기 할 말 있는데... 시간 좀 내주세요”







서대리와 이야기하는 승희의 표정이 그다지 밝지 않다. 하지만 그런 승희라도 먼저 말을 걸어주었다는 사실 하나에 서대리는 감동이라도 받은 듯 환희에 찬 표정으로 승희를 바라보며 말한다.







“무.. 무슨 얘기? 시간? 당장 내야지 당장!!”







승희의 말에 서대리는 자리에서 벌떨 일어나며 호들갑을 떤다. 승희가 주변을 돌아보자, 주변의 다른 직원들이 그 모습을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는 것이 보인다.







“저기... 이따가 퇴근후에 회사 근처 까페에서 봐요”



“그..그래!! 승희씨 저기 역 근처에 ㅇㅇㅇ있잖아 거기서 보자구!!”







평소 서대리를 무시하고, 그에게 어떤 말도 붙이지 않던 승희였기에, 사무실의 다른 직원들이 승희를 쳐다보는 눈길이 심상치 않다. 승희 역시 그런 시선이 약간 부담됐는지, 퇴근 후 만나기로 한 회사 앞 까페가 전날 그 사내에게 추행당한 그 까페임에도 불구하고, 서대리의 말이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제 자리로 돌아간다.

승희가 자리로 돌아가자, 노총각 서대리는 몹시 즐거운 표정이다. 마치 세상을 다 가진듯한 얼굴이 이런 것일까? 즐겁게 콧노래까지 부르는 서대리... 얼굴 가득 똥씹은 표정으로 고개만 팍 숙이고 있는 승희와 비교하니 무척 대조적이었다.







“서대리 뭐 좋은일이라도 있어?”







때마침 서대리 곁을 지나던 김과장이 흥얼거리는 서대리를 보고 묻는다.







“아!! 하하하하 세상 사는게 다 즐거운 일 아니겠습니까? 하하하하 과장님도 한번 웃어보시죠? 하하하하하”



“원 사람 참 싱겁기두...”







그 모습을 본 다른 사무실 직원들은 그것이 승희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과장 몰래 킥킥 거리며 웃어댔고, 그럴수록 승희는 못난 서대리의 얼굴과 직원들의 웃음소리가 한꺼번에 오버랩되어 괴로운지 책상앞으로 고개를 숙인 채 이를 악다문다.







“두고보자... 두고보자... 내가 돈만 손에 넣으면... 니들... 내가 다시는 보나 보자... 김과장, 서대리... 여튼... 다 바이바이다!!”







승희의 이런 다짐을 아는지 모르는지, 영문도 모른 채 함께 웃는 김과장, 그리고 더 우렁차진 서대리의 웃음소리가 사무실을 가득 채운다.









한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비 바람이 몰아치더니 제법 쌀쌀한 찬 바람이 거리에 나부낀다. 도로위엔 출근시간 만큼이나 분주한 퇴근 행렬이 지루하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이상하리만치 차가워진 날씨 탓인지, 역사 인근의 까페엔 연인 또는 친구들과 함께 따듯한 커피를 마시기 위해 찾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어제 일로 더 이상 이 까페엔 오고싶지 않은 승희였지만, 서대리가 콕 찝어 이 까페를 이야기하는 통에 어쩔 수 없이 투덜거리며 까페 맨 구석자리에 자리를 잡는다.







“승희씨 미안 오래기다렸지? 갑자기 김과장님이 거래처에 보내주라고 한게 있어서 말야! 하하 같이 나올걸 그랬나봐 그치? 참! 뭐마실래? 커피? 아 여긴 거의 다 커피지?”



“저는 그냥 아메리카노나 한잔 마실께요”







행여나 같이 나가자는 말을 할까봐, 승희가 남의 이목을 피해 서둘러 사무실을 빠져나왔다는 것을 모르는 서대리가 사람 좋은 표정을 하며 웃었고, 평소 카푸치노를 즐기지만, 어제의 일을 다시 떠올리기 싫은지 승희는 어제 마셨던 카푸치노 대신 아메리카노를 시킨다.







‘화장실에서 흥분해가지고 보짓물이나 질질 흘리다니... 서승희 병신같은 년!!!’





“주문하신 아메리카노 두잔 나왔습니다.”



“아이구 고맙습니다. 하하하”







서대리가 만면에 미소를 띈 채 아메리카노 두 잔을 들고 승희에게로 다가온다. 승희는 그제서야 한껏 찌푸린 표정을 풀고, 최대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한다.







“고마워요 서대리님”



“아니 뭐 이깟 커피가지고... 하하하 승희씨만 좋다면야 내가 뭐 뭔들 못해주겠어! 자자 식기전에 커피나 들어... 어이구... 왜케 쓰냐... 거기 아가씨! 설탕 좀 더 줘야 쓰겄는데?”



“고객님 저쪽으로 가셔서 시럽 더 넣으시면 됩니다.”







평소 까페 같은 곳엔 와 봤을리도 없는 서대리가 까페 점원에게 아가씨니 뭐니 하면서 촌티를 연발하자, 애써 밝게 펴 놓은 승희의 미간이 다시 우그러 든다. 하지만 눈치없는 서대리는 그런 승희의 기분 변화도 모른채 주저리주저리 떠들기 시작했다.







“이거 뭐 커피 마시고 우리 뭐할까? 저기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서 밥 먹고, 영화라도 한편 볼까? 응? 하하하 장대리님이 이 근처에 죽이는데가 하나 있다고 하드라고!”







평소 입이 가볍기로 소문난 장대리한테까지 자신을 만난다고 얘기했다는 생각에 승희의 미간이 한층 더 찌푸려진다.







“저기... 서대리님 제가 돌려 말하는걸 잘 못해서 딱 본론만 이야기할께요”



“그래! 승희씨 괜찮아!! 얘기해!!



“돈... 돈 좀 빌려주세요”



“아...”







서대리의 얼굴이 약간 굳어진다.







“필요하면 빌려주신다고 했잖요 돈...”



“그랬지... 잠깐만 나 전화 좀 잠깐 하고 올게... 전화할데가 있는데 깜빡해서”



“그러세요”







서대리가 잠깐 커피숍 바깥으로 나간다. 일, 가족 빼고는 딱히 전화할데도 없는 서대리일텐데, 심각한 표정으로 전화를 하고 있으니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는 승희, 하지만 승희는 누구와 통화하는지 그다지 궁금하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다. 오직 서대리가 얼마만큼의 돈을 빌려줄 것인지만이 그녀의 주된 관심사였다.

한참을 통화하던 서대리, 몹시 무거운 표정으로 자리에 돌아오더니 승희에게 말한다.







“승희씨... 제가 사실 촌놈입니다. 아버지 일찍 돌아가시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학교도 공고 나오고, 제가 고졸인건 아시죠? 저 중학교 성적만 보면 충분히 인문계 고등학교 가고 대학도 갈 수 있는 놈이었는데, 홀어머니 모시고 살아갈려니까 다 포기하고 19살때부터 죽어라 일만했습니다.”





‘아니... 미쳤나 지 인생사는 갑자기 왜 이야기하는데...’







승희의 미간이 한층 더 찌푸려진다. 하지만 그런 승희의 속마음을 알리 없는 서대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제 나이가 이제 서른 넷입니다. 그 동안 변변치 않은 연애 한번 못 해봤어요. 제가 못 난 탓도 있지만, 집안 형편도 있고, 돈 벌어서 근사한 집 사고, 어머니 호강도 시켜드리고 할려면 죽어라 돈 모으는 방법밖에 없드라구요. 지난 15년간 정말 알뜰하게 벌었습니다. 내근, 외근, 시간외 안가리고 돈되는 일이라면 다 했구요. 정기적금 납입일 다 되어가는데 납입액 부족하게 되면 야간에 대리운전 알바까지 뛰면서 적금 부었습니다. 지난 달에 만기 되었구요. 집 사는데 들어간 대출금도 올초에 다 갚았고, 저 이제 살만합니다. 통장도 여러개고... 주변에서 여자 소개시켜준다고도 하고 선 자리도 들어오고요...”



“네 서대리님 성실하시죠...”



“근데, 사람이 참 웃겨요. 먹고 살만하고, 배때기에 기름 좀 차고, 어머니도 요즘엔 잘 웃으시고 하니까... 정신이 나갔나봐요. 사랑이란게 하고 싶더라구요... 사춘기 시절에도 안 해 보고, 철없는 스무살 시절에도 안 해본 사랑이란게.... 떡 하니 제 가슴속에 파고 들더라고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뭐야... 지금... 삼류 영화찍어? 아주 신파 소설을 줄줄 읽는구나 읽어...’







승희는 터져나오려는 하품을 억지로 참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중인 서대리에게 집중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서대리가 진지해지면 질수록 더 그 모습이 부담스러운 승희였다.







“처음 승희씨가 우리 부서로 발령이 난 2년전부터 마음속 깊이... 제가... 뭐시냐... 좋아하고 있었습니다... 돈도 더 모아야하고, 집 대출금도 남고 해서 정말 제가 참아보려고 노력 많이 했습니다. 근데... 사람 마음이란게 참 요상한게... 참고, 잊어보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더 승희씨 얼굴이 눈에 아른거려서... 아 그게 정말 사람 미치게 만든다니까요? 안 믿으시겠지만!! 승희씨 제 첫사랑입니다. 이제 저 돈 많습니다. 근사한 30평 아파트도 하나 있구요! 홀어머니 모시고 사는게 쪼금 죄송스럽긴 하지만, 저희 어머니 정말 좋은 분이예요. 남에 집 귀한 딸 데려다가 시집살이 시키실 그런 분 절대 아닙니다!”



“서대리님... 너무 앞서 나가시는거 아니예요? 지금...”



“잠자코 제 말 좀 더 들어요!!! 나 지금 진지합니다 진짜!!!”









‘뭐야!! 갑자기 왠 박력!!! 어휴... 초... 촌놈이...으...’







늘 승희에게 쩔쩔매던 서대리가 갑자기 승희에게 언성을 높이자, 승희는 깜짝 놀라 서대리를 바라본다. 하지만 그런 승희는 아랑곳 않고 무언가에 홀린 듯 서대리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돈 빌려드리겠습니다 승희씨”



“예? 아....”







서대리의 말에 승희의 얼굴에 모처럼 화색이 돈다.







“얼마면 되겠습니까?”



“저.. 저야 많으면 좋지요... 한... 천만원”



“천만원이요?”







승희가 천만원을 이야기하자 서대리의 얼굴이 굳는다. 그러자 놀란 승희가 다급히 이야기한다.







“너... 너무 많나요? 그럼 저... 저기 한 팔백이라도...”



“음...”



“한 오백도 안될까요?”









승희의 얼굴에 비굴한 기색이 스쳐지나간다. 당장의 일확천금 때문에 이미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 승희였다.

그때 입을 다물고 있던 서대리가 입술을 깨물며 이야기한다.







“오천... 오천 빌려드리겠습니다.”



“오... 오오... 천????”







서대리의 말에 승희의 눈이 휘둥그래진다.







‘뭐.. 뭐야... 이 촌놈 통장도 많고, 돈도 많다더니 진짜였나보네... 오... 오천이나 빌려주다니... 대박!!! 대박이다!!“







승희의 머릿속에서 분주히 계산이 이루어진다. 서대리가 빌려줄 오천에 지난 아르헨티나전의 배당 509.9배가 떠올라 무려 250억대의 거금이 차례차례 그 긴 자릿수를 드러낸다. 꿈에도 생각해본적 없는 거금... 아직 돈을 받은 것도 아닌데, 상상이 전해오는 희열에 승희의 눈엔 눈물이 핑 돌 것만 같다.







“서대리님.. 고마워요... 제가 그 동안 너무 못되게 굴어서 미안해요 실망 많이 하셨죠? 제가 그렇게 나쁜애는 아닌데... 흑... 서대리님 정말 고맙습니다.”







승희의 고개가 연신 숙여진다. 대머리 김과장에게도 이렇게까지 고개를 숙여가며 인사해본 적은 없는 승희였건만, 당장에라도 거금을 만질 수 있다는 생각에 서대리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다.

하지만 그런 승희를 굳은 표정으로 바라만보던 서대리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조... 조건이요?”







승희의 표정도 굳어진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승희를 엄습해왔다. 인간은 학습의 동물이라더니 어제 이 까페에서 있었던 일들이 승희의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자신도 모르게 서대리가 쳐다도 보지 않는 치맛자락을 애써 잡아 당기는 승희, 재빨리 고개를 들어보지만 서대리의 손은 여전히 커피잔만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고, 그의 시선은 승희의 두 눈만 바라본다.

그제서야 자신이 쓸데없이 오바했다는 생각이 들어, 무안한 표정으로 몸을 움츠리는 승희...







“그 돈 오천... 승희씨가 무슨 목적으로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정말 큰 돈입니다.”



“그... 그렇겠죠 큰 돈이죠...”



“그 돈 제가 무슨 생각하고 모은줄 아십니까?”



“그... 글쎄요?”







승희에게 질문을 던진 서대리의 표정이 더 없이 진지하다.







‘뭐... 뭐야 이 박력은... 아까부터 자꾸 무게감있네 이 사람...’







승희는 지금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서대리가 평소 자신이 무시하던 서대리가 아닌 마치 다른사람처럼 느껴졌다.







“그 돈... 제 결혼자금입니다.”



“결혼... 자금이요?”



“네 결혼자금이요! 나중에 결혼하면 신부한테 좋은 것도 해주고, 행복하게 살려고 적금들고 뭐하고 해서 따로 모은돈이란 말입니다. 무슨말인지 아시죠?”



“그.. 글쎄요...”



“그 돈이 없으면 나는 결혼 못합니다. 내 나이가 벌써 서른 넷입니다. 이제부터 돈 모아선 장가 못가요... 아시죠? 그 말인 즉슨...”



“......”



“그 돈 못 갚으면... 승희씨... 책임지고 나랑 결혼합시다.”



“네??”



“급하게 나와서 반지도 없고... 근사한 데는 아니지만... 나 지금 승희씨한테 청혼하는 겁니다. 청혼이요 프로포즈!”







승희의 뒤통수가 쇠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멍하다. 갑작스런 청혼이라니... 승희는 그 역시 촌놈 서대리 답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재빨리 머릿속으로 계산에 들어간다.







‘뭐야! 지금 꼴랑 돈 오천으로 나를 사겠다는거야 뭐야!!! 미친놈! 돌은거야 뭐야! 확 커피를 이 놈 얼굴에다 뿌려버리고 나가? 아니야~! 돈 오천을 빌려준다잖아! 그리고 서대리 말 못 들었어? 못 갚으면 이라잖아!!! 그 깟 돈 빵 터트려서 배로 갚아주면 그만이지 뭐! 정말 한 250억 정도 벌면 내가 개평이라 치고 일억정도 못주겠어? 그럼 지도 포기하겠지... 나랑 지랑 수준차이가 얼만데... 안그래? 승희야 참자!! 이 촌놈이 한번 대박 내보려고 나한테 배팅하는거잖아... 까짓꺼 돈 벌고 갚아주면 그만이야!!’







승희의 마음속에서 아직 만져보지도 못한돈 250억과 서대리의 청혼이 커다란 저울위에 함께 놓여진다. 승희가 한번도 생각해 본적 없는 늙은 시어머니와, 지저분한 아파트가 보인다. 멋이라곤 찾아보려고 해도 안 보이는 서대리... 그의 뻔한 월급과 힘들게 아이들을 낳아 키우는 자신의 초쵀한 모습이 그려졌다. 승희는 잠시 그 끔찍함에 몸서리를 친다.

하지만 이내 호화로운 차와 고가의 드레스... 디자이너 베라왕이 직접 최고의 고객들만을 위해 한 정 제작한 아름다운 하이힐을 신고 백화점에 들른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 수많은 직원들이 VVIP인 자신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작고 초라한 지금의 반전세 오피스텔이 아니라 주상복합 아파트의 널따란 거실에서 유유자적하게 커피를 마시는 승희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좋아요 서대리님... 돈 빌려주세요”



“스... 승희씨 그럼!!!!”



“네! 제가 돈 못 갚으면, 그렇게 해요!!!”



“아...”



“돈 갚을 수 있을지 말지 여부는 일요일 경기 끝나면 알 수 있으니까! 그때 봐요!!”



“그.. 그럼?”



“월드컵 경기 끝나는대로 알려드린다구요!”



“아... 좋아요 그럼 기다릴테니까 월드컵 경기 끝나는 시간에 여기 이 까페에서 만납시다 승희씨”



“흥!!! 그러든지요! 저야 그냥 전화나 문자가 편하지만, 그때 확실한 대답을 해드리는 것도 좋겠네요!!! 미리 말해두지만, 저는 그 돈 꼭 갚을꺼예요 서대리님!!!”



“스... 승희씨...”



“돈 오천가지고 사람 가지고 놀려고 하지 마세요!! 정말 서대리님 그렇게 안봤는데 오늘 조금 실망했어요!! 돈 꼭 빌려주세요! 당당하게 갚을테니까!! 그리고 저 먼저 일어설께요! 계좌번호는 문자로 바로 찍어드릴테니까 보시는대로 송금해주시구요! 저 가요!!!”



“스!! 승희씨!!!!!”







승희가 재빨리 몸을 일으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까페 밖으로 나가버린다.

홀로 까페에 남은 서대리는 참담한 표정으로 그렇게 떠나가는 승희의 뒷 모습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까페 쇼윈도에 비치는 즐거운 연인들의 모습이 저 멀리 아스라이 사라져가는 승희의 뒷 모습과 오버랩되어 서대리의 마음을 아프게한다.

그렇게 한 참을 멍하니 앉아있던 서대리는 싸늘하게 계좌번호와 은행명만을 적어 보낸 승희의 문자를 보며, 핸드폰을 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한다.













[2010년 6월 25일 금요일]



다시금 괴문자의 사내로부터 연락이 온 것은 금요일 아침이었다.







‘지난 번 그 까페... 당장 만납시다.’







다행히 당장의 일확천금에 꿈 때문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던 승희인지라, 미리 휴가를 내 두어 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다시 그 까페로 간다는게 영 마음에 걸렸다. 심지어 어제도 승희는 서대리와 그 까페에서 만남을 가진 터였다.







“그래... 집근처 어디 까페로 장소 바꿨다가, 내 뒤라도 쫓으면 어떻게해... 돈 생기면 어차피 회사야 그만 둘꺼고... 최대한 내 신상정보는 숨기는게 좋을꺼야!”







곧 나가겠다고 답장을 보낸 승희는 재빨리 화장을 한다.

이제 자신의 운명을 건 일생일대의 도박이 시작되고 있음에, 승희의 가슴이 떨려온다.







“난 꼭 성공할꺼야!! 부자도 될꺼고! 회사도 때려치울거야! 서대리 한테 빌린돈도 단 밖에 갚고!! 남 보란 듯이 멋지게 살자 승희야!!!”







굳은 다짐을 하며 집을 나오는 승희, 거리엔 이미 한층 뜨거워진 월드컵 열기를 반증하듯, 수많은 사람들이 붉은 티셔츠를 입고 다닌다. 불과 이틀후면 승희의 운명을 결정지을 대망의 4차전이 시작된다.







벌써 삼일째 똑같은 까페 문을 여는 승희, 정작 까페 알바들은 승희에게 아무 관심도 없어 보이건만, 승희 혼자 혹시라도 자신의 얼굴을 알아볼까 고개를 숙이며 들어간다.

승희가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까페 구석에서 이틀전과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내가 보인다. 승희는 다시금 자신의 옷 매무새를 바로잡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에 있는 옷 중 가장 타이트한 스키니 진을 입고 자리에 나온 승희였다.







“금방 오는거 보니까 집도 인근인가보지?”



“아... 아니예요!”



“흐흐흐 걱정마... 어디사는지 따윈 궁금하지도 않으니까! 근데... 돈은 준비됐나?”



“오백이요?”



“아니... 그 까짓 오백이야 뭐 중요하나? 승희씨도 내가 4차전 결과를 알려주면 배팅을 해야할꺼 아냐! 배팅할 돈 준비했냐구!”



“그... 그건...”



“하하하하 걱정마... 그 돈 어떻게 할려고 물어보는게 아니니까! 난 다만, 승희씨가 혹시 내가 결과를 알려줘도 돈을 못 구해서 배팅을 못할까봐 걱정이 돼서 그래...”







사내가 안심하라는 듯이 미소를 지어보였지만, 승희는 아직 사내에 대해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우물쭈물하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사실 오늘 아침 사내의 문자가 오기전에 폰뱅킹으로 서대리가 5천만원을 입금했다는 것을 확인한 후였기에, 승희의 대답은 더 머뭇거려졌다.







“정말이래두 그러네... 뭐 아무래도 좋아... 말하기 불편한것도 당연하지... 나도 수컷이다보니 그날은 미안해~ 나도 모르게 승희씨의 아름다운 육체를 보니까 흑심이 생기지 뭐야 이해하지? 사내들이란 원래 다 그렇잖아”



“뭐 그날은 됐어요”







승희는 지저분한 화장실에서 흥분해버린 자신과, 화장실 문을 열어 문 밖의 사내들에게 자신의 젖은 모습을 보여줄뻔 했던 그날의 일들이 떠올리기 싫은 듯, 있지도 않은 치마단을 끌어내리려 허벅지를 더듬는다.







“오백만원 마저 탕감해줄께!”



“저... 정말요?”



“그래! 그리고 멋진 제안도 하나 하지...”



“머.. 멋진 제안이라면...???”







사내가 급히 사내가 앉은 탁자쪽으로 상체를 들이미는 승희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이미 승희는 사내의 이야기에 빠져들고 있었다.







“승희씨가 급하게 돈을 빌리든 어쩌든 해봐야 1~2천만원 아니겠어? 혹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끽해야 5~6백만원이 다 일테고...”





승희가 서대리에게 5천만원을 빌렸다는 사실을 사내가 알 리가 없기에, 승희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지만, 혹시나 사내가 좀 더 달콤한 제안을 해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에 귀를 귀울인다.







“내가 잘 아는 투자자가 있는데... 아주 건실한 금융인이지... 뭐 떳떳하게 드러내놓고 영업하는 그런 회사는 아니고 사금융에 가깝긴하지만... 승희씨만 좋다면 한 5천정도 빌려줄 수 있다던데?”



“오... 오천이요?”



“그래 오천만원...







승희의 머릿속 계산기가 다시 한번 분주히 움직인다. 서대리가 빌려준 오천만원에, 이 괴사나이가 말한 돈 오천만원이 합쳐지고, 또 아르헨티나전 509.9배의 배당이 수식에 포함되며 무력 500억이라는 큰 돈이 그 굉장한 위용을 드러낸다.







“전... 다.. 담보도 없고...”



“담보가 없긴 왜 없어... 이렇게 잘 젖고 신선한 육체가 있는데...흐흐흐”







사내의 표정이 다시금 야릇하게 변하며 승희의 몸을 위아래로 훑는다. 여름임에도 단단하게 챙겨 입은 승희였건만, 사내의 시선에 마치 알몸을 보이기라도 한 듯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잘 생각해봐... 어차피 갚으면 그만이야! 안그래? 투자를 받던 안 받던... 한번 만나나 보라구... 미리 말해두지만... 그 분은 자기 마음에만 들면 이자도 없이 빌려주실 요량인 것 같아!”



“그.. 그런...”



“긴 말해서 뭣하나? 까페 밖에 내가 차를 준비해두었으니까 같이 가지! 뭐해! 서둘러!”







승희는 사내의 말에 얼떨결에 함께 까페 밖으로 나간다. 까페 앞에는 그럴듯한 중형 승용차가 한 대 서 있었다.







“그래 혹시 모르니까 번호판을 외워두자... 심야에 택시같은거 탈때도 번호 외워두면 나중에 경찰 신고해서 잡고 그런다며...”





‘서울 41허4ㅇㅇㅇ’







승희는 사내의 차에 타면서도 내내 차량번호를 되새긴다.







‘역시 난 똑똑해... 차량번호까지 외워뒀으니 만일에 무슨일이 생겨도 아무 문제 없을 거야... 승희야! 힘내자!! 파이팅!!’





“무슨 생각을 그렇게해? 안전벨트나 매... 약간 교외로 나가야 할 거 같으니까! 걱정은 하지마 잘해야 한시간이면 충분해”



“네... 네...”







사내의 말대로 불과 한시간여 만에 도착한 것은 교외의 어느 한적한 까페 앞이었다.

오는 동안 내내 사내의 차량번호 외우기와 거액을 움켜쥐는 상상을 하는 통에 정확한 위치는 가늠이 되지 않았지만, 여튼 인천에서 그리 멀리 떨어진 곳 같지는 않았다.







“어서 내려... 다 왔으니까”







운전하는 내내 스키니진을 입은 승희의 다리를 어루만지던 사내가 시동을 끄고 승희에게 말했다. 승희는 사내가 말한 사금융업자의 사무실과는 다소 동떨어져 보이는 호젓한 까페의 모습에 다소 의아해 하긴 했지만, 별다른 의심 없이 사내를 따라 까페 안으로 들어섰다.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아! 자네로군... 흐흐흐 그래 어떻게 그때 말했던... 아!!!”







사장이란 남자는 사내와 인사를 나누다 말고 승희를 보자마자 밝은표정이 되어 시선을 고정한다.







“오오... 좋군... 내가 관상을 조금 볼 줄 아는데 딱 보면 안다니까? 흐흐흐 저 눈매며, 골반과 허벅지의 각도... 음핵을 연상시키는 귓바퀴의 모양과 코와 인중의 형태... 흐흐흐 볼 것도 없는 최상품이야!”



“역시 사장님... 잘 알아보시는군요... 이런 말씀 드리긴 민망하지만, 제가 미리 확인을 조금 해보았는데... 하하하 바닥을 흠뻑 적실만큼 뜨거운 여잡니다.”







사장과 사내의 대화에 승희는 치밀어 오르는 민망함을 억지로 누르며 고개를 돌린다. 그러자 사장이란 사내가 천천히 승희에게로 걸어와 말했다.







“상의를... 상의를 좀 벗어보겠나?”



“네?”



“상의를 좀 벗어보라고! 가슴이나 유륜의 형태가 궁금하네... 극상품일수록 세세한 부분을 확인해야 하는 법이라 말이지... 흐흐흐 함몰 유두거나 크기는 좋은데 너무 탄력이 없어도 그건 마이너스지”



“무슨 소리 하시는거예요 지금!!!”







사장의 말에 승희가 버럭 화를 낸다. 하지만 한껏 찡그린 미간과 달리 승희의 두 다리는 곧 다가올 일확천금에 대한 꿈 때문인지 꿈쩍 않고 움직일 줄을 모른다. 그 사실을 간파했는지, 괴문자의 사내가 승희에게로 다가와 어깨를 짚으면 이야기했다.







“잘 생각해봐... 무려 오천만원이라구... 오천... ”







승희의 머릿속 계산기가 한시간전의 계산을 다시금 복기한다. 500억... 정말 살떨릴만큼 큰 액수의 돈이다. 승희는 갈등하기 시작했다.







“흥! 마음에만 들면 1억도 지불할 수 있어!!!”







승희의 고민을 한순간에 종식시키는 사장의 말에, 승희의 계산기가 더더욱 바빠진다.

서대리가 입금해준 5천만원을 더하면 총액 1억 5천이다.

1억 5천의 509.9배... 승희의 머릿속이 빙글빙글 돈다.







‘764억 8천 5백만원.... 허... 헉...’







점점 그 최종액을 높여만 가는 엄청난 상상에 승희의 두 눈이 핑핑 돌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과연 승희의 운명은?





- 다음편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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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많은 사채업자에게 찾아가는건, 뭐 좀 뻔한 설정같겠지만, 선 뜻 돈 빌려줄

만한 사람이란게, 다 거기서 거기인 것 같네요... ㅎㅎㅎ

부족한 제 상상력을 이렇게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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